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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제목 [공지] [샘후원자이야기]주님, 선한 일에 사용해 주세요. 날짜 2018.01.16 16:41
글쓴이 샘복지재단 조회 1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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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된 다음날 저녁, 산부인과 의사이자 오랫동안 샘복지재단 후원이사로 함께 하신 주리애 이사님을 만났습니다. 작년 국내외에서 4회 실시한 사랑의 왕진버스 이동진료 봉사활동에 모두 참여하셔서 고려인, 조선족 동포와 외국인근로자를 치료하신 이사님과 나눈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Q.‘주리애’라는 이름이 독특한데 어떤 이야기가 담겨져 있나요?
지금도 ‘주리애’라는 이름은 흔하지 않지요. 이름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습니다. 예상하시는 대로 ‘로미오와 줄리엣’ 여주인공인 ‘줄리엣’의 이름을 따서 주리애(朱利愛)라고 제 이름을 지어주셨어요. 딸이 태어나서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싶으신데 마땅한 이름을 찾지 못하시다가 갑자기 ‘줄리엣’이 생각나셨대요.(웃음) 그래서 별명도 줄리엣이었어요. 덕분에 사람들이 제 이름을 잘 기억해주는 것 같아 고맙기도 하구요. 어디를 가든지 이름 때문에 나쁜 일도 못해요.(웃음)

Q.어떤 계기로 SAM을 알게 되셨나요?
의사가 되어 17년 동안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환자위주의 삶으로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어느날 문득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을 모르겠더라구요. 일에 대한 보람도 있지만 나를 돌아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미국에서 유학중인 자녀들을 돌볼 겸 다 내려놓고 미국으로 건너갔어요. 사실 잠깐 있다가 돌아와야지 했는데, 미국에서 4년을 지냈어요. 그 시기에 샘복지재단과 박세록 대표님을 알게 된 거에요.
 당시 미국의 한 교회에서 박세록 대표님 집회를 참석했는데 저와 같은 산부인과 전공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어요. 그래서 집회가 끝난 후 ‘사랑의 왕진가방’ 도서를 사서 싸인 받으러 가서 박세록 대표님께 ‘산부인과 의사시죠?’라고 말했더니 어떻게 아느냐고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나중엔 저보고 같이 일해보자고 하셨어요. 지금 되돌아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신 말씀이신 것 같지만요.(웃음) 그때 그 기억이 지금까지도 강하게 남아 있어요. 하나님께서 심어 주신 마음이기에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Q.뒤늦게 의학 공부를 하셨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이과계열이라 생물학을 전공해서 교수가 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학교에 오셔서 영문과로 써달라고 하신거에요. 지금 같으면 제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선택하겠지만 그 당시에는 가정형편 때문에 의대 가는 것에 부담을 느꼈었죠. 또 막내딸이라 아버지께선 영문과가 막연하게 좋다고만 생각하셨나 봐요.(웃음) 그래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일단 입학을 하고 3학년까지는 열심히 놀다가 외교관이 되야겠다 생각해서 외무고시를 준비하려 했는데 시간도 부족하고, 집에서도 취직해서 돈 벌라며 공부하는 것을 반대하셨어요. 그래서 졸업 후 취업을 하고 일하면서 틈틈이 고시준비를 했는데 공부할 시간도 안나고 기대했던 것과 달라 1년 반 정도 근무한 후 직장을 그만두었어요.

다시 외무고시를 준비하던 중에 신학공부를 하는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저에게 “너는 의사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렸는데 친구의 말이 자꾸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거에요. 그래서 저의 진로와 적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며 다시 기도하면서 의사의 길을 가는 것으로 결정했죠.(웃음) 의사가 제 적성에도 잘 맞은 것 같고요. 문제는 제가 문과계열을 전공해서 의대로 편입이 안 된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다시 수능을 보고 의과대학에 들어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죠. 다시 걷는 길이기에 의사가 되면 선한 일에 사용되기를 기도했었는데 아마 다른 의사들도 저와 같이 의사가 되면 선한 일을 하고자 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시작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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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작년에 ‘사랑의 왕진버스’(국내 3회, 해외 1회)에 모두 참여하여 봉사하셨는데, 어떤 느낌을 가지셨는지요?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샘복지재단에 후원하며 가끔씩 행사나 모임에도 참석했었는데 그 때보다 지금이  SAM에 대한 마음이 더 좋아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작년에 사랑의 왕진버스가 다시 시작되어 너무 반가웠어요. 특별히 중국 조선족 양로원 의료봉사에서 섬기고, 단동복지병원도 방문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잊지 못할 시간들이 되었고, 한민족과 북녘동포에 대한 마음이 새로워진 것 같아요. 많은 해외의료봉사를 참여했지만 한민족 동포를 대상으로 활동에 참여하니 참 많은 것들이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왔어요. 새로운 지경이 더 넓어지게 된 것이죠.
 
예전에 박세록 대표님이 하신 말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우리와 가장 가까운 북녘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가족, 친척, 형제들은 굶주림과 질병으로 힘들게 살고 있는데 아무도 돌아보지 않으면서 저 멀리 있는 아프리카부터 돕는다는 것이 맞는가?”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어요. 북한을 돕는 일이 평범한 일은 아니잖아요. 북녘동포를 돕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보다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 같아요.

Q.앞으로 바라시는 소망이 있으시다면?
저는 어려서부터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잔잔하게 행복을 전해주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지금은 제 신분에 맞게 의사로서, 그리고 샘복지재단 후원이사로서 제게 주신 사명을 가지고 나름대로 뭔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고 있어요. 기회가 닿는 대로 북녘동포들을 돕고 싶어요. 우리민족이기에 먼 얘기가 아니라 가깝고 실제적이며 특별한 일이지요. 예전에 제가 통일이 되면 북녘 땅에 가서 아이를 받고 싶은 소망을 적은 적도 있었는데 조만간 주님이 응답해 주시겠지요?(웃음)


 

                                                                                               -인터뷰에 응해주신 주리애 이사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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